3월 24일 아침 7시,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을까, 두리번거리며 걷는데 배둔시장 앞에 난전이 펼쳐져 있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야채를 다듬고, 해산물을 손질하며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쪼그리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시골장터 분위기였다. 오늘 장날인가 봐요, 가볍게 인사겸 말을 건넸더니, 4일과 9일에 장이 선다고 했다. 게 쭈꾸미 해삼 생멸치 피조개 생미역... 그리고 봄쑥 풋마늘 상추 취나물 시금치... 한 무더기에 천 원에 사가라고 했는데 겸연쩍게 웃음으로 답했다. 그러고는 옆 리어카 과일 파는 아주머니에게서 참외 3개를 4,000원 주고 샀다. 아주머니는 올해는 무슨 영문인지 꿀벌들이 많이 사라져, 참외 수정이 잘 안돼 비싸다고 했다.
들판 가운데 논길을 걷다가 방천 뚝길을 걷다가, 해상 보도교를 건넜다. 다리 위에는 실제 모형을 재현한 커다란 거북선 조형물이 떡하니 지키고 있었다. 곧이어 한국농어촌공사에서 관리하고 있는 마동호 방조제를 건넜다. 지도를 보니 고성읍을 돌아 나오는 고성천이 방조제 안쪽으로 흘려 들어오고 있었다. 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고성읍에서 당목을 거쳐 남해 바다로 나가는 뱃길이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조제를 건너 동해로를 따라 걷다가 내곡리 마을길로 들어섰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논을 갈아놓았고, 이른 모내기를 하기 위함인지 물이 담겨 있는 논도 더러 있었다. 마을 안 길을 따라 들어가니 목련꽃이 하얗게 핀 예쁜 집이 있었고, 마치 그림을 그린 듯 밭이랑이 가지런히 그어져 있는 밭도 보였다. 초록빛이 유난히 돋보이는 마늘밭도 눈에 들어왔고, 가축분뇨로 거름을 만드는 퇴비장의 냄새도 그리 역겹지 않았다. 초봄에 보고 느낄 수 있는 농촌의 아련한 풍경이었다. 이런 정겨운 풍경을 만나니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마을길을 지나고 논밭길을 지나 10시쯤 거류면 사무소 소재지에 도착했다. 점심 먹기엔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아침 일찍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에 배둔시장에서 산 참외로 요기를 때운 탓인지 허기가 졌다. 인터넷으로 맛집을 검색하여 전화를 걸어보니 대부분 11시부터 영업을 한다고 했다. 마땅한 음식점이 있을까 돌고 돌아 문을 연 돼지국밥집에 들어가 막걸리 한 병에 내장국밥을 얼큰하게 먹었다.
거류 앞바다는 푸르고 맑았다. 너무나 투명해 바닷속 해초까지 보였고, 미더덕 양식 바지선이 모여 있는 바다는 그야말로 쪽빛이었다. 그리고 그 쪽빛은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더 짙어졌다. 마치 쪽빛 스펙트럼의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는 듯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파스텔톤 쪽빛 바다는 매력적이었다. 그 바다색에 취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먼바다 멍게 양식장의 하얀 부표도 흰 백조가 무리 지어 있는 듯 아름다웠다. 산책로 옆 작은 꽃동산이 눈길을 끌었다. 꽃이 지고 볼 품은 없었지만, '봉림마을' '용산마을'... 꽃밭을 가꾼 마을 팻말이 꽂혀 있었다. 해파랑길 울산구간과 포항구간에서 기업이 관리하는 둘레길 구역을 본 적이 있는데, 이곳에는 마을단위 자율적으로 꽃밭을 관리하는 정성이 아름다웠다.
남파랑길 13코스는 고성 거류 해변을 따라가다 통영 안정 황리사거리에서 끝나고, 14코스는 통영 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통영과 거제를 돌고 돌아 남파랑길 31코스에서 또다시 고성지역으로 연결된다. 같은 고성지역이지만 코스가 연결되지 않고 구간 간격이 너무 떨어져 있다. 행정구역이 아니라 바닷길을 따라 코스를 정하다 보니 생긴 결과인 것 같았다.
코스 순서대로 걸을 것인가, 행정구역 중심으로 걸을 것인가. 여행계획을 짤 때 고민 고민하다가 행정구역 중심으로 걷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남파랑길을 느끼고 표현하자'는 시작할 때 다짐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황리사거리에서 고성행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는 오전에 걸었던 거류면과 동해면을 지나갔다. 차창밖으로는 생각보다 너른 들판이 계속 이어졌다. 가까이 바다가 있고 너른 들판도 있으니 고성지역은 예부터 물산이 풍부했고 사람 살기에 좋은 고장이었을 것 같았다.
고성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소가야시대 무덤인 송학동 고분군이 있었다.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부에 조성된 소가야의 왕들 또는 지배자 집단의 무덤이었다. 낮은 구릉 위에 봉긋 솟은 무덤군은 그 자체로 경외롭고 신비로웠다. 마침 나들이 나와 어린아이 손잡고 행복하게 고분을 오르는 가족의 뒷모습에서 긴 역사를 이어온 우리의 모습이 오브랩 되었다. 소가야 왕국의 영화와 오늘을 사는 소시민의 행복, 결코 무관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소가야, 그들이 스스로 겸손하게 부른 이름일까, 후세에 역사가들이 붙인 이름일까.
가야라는 나라는 미지의 나라이고 미스터리의 나라다. 엄연히 한반도 남부에 500여 년 이어온 나라인데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주변 신라나 백제는 일찍 고대국가로 성장하였는데, 왜 그들은 끝까지 연맹국가로 존속했을까. 낙동강과 남강 유역 그리고 남해안을 따라 번성했던 가야 소국들은 고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으며, 어떻게 나라를 경영하였을까. 많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고성박물관 입구에는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안내 배너 광고판이 서있었다. 가야 고분군은 경남, 경북과 전북에 걸쳐 7개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고 했다. 가야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잠자고 있는 가야가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
고성시장을 지나고 중심가를 지나 남산공원으로 향했다. 고성 거리는 지방 읍소재지치고는 유동인구가 많았고,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 활력을 잃어가는 읍소재지를 많이 봤는데, 비교적 활력이 느껴졌다. 남산공원 비석거리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 충혼탑 앞에서 발길이 멈춰졌다. 많은 충혼탑을 봤는데, 상징성과 조형미가 눈에 띄게 돋보였다. 암적색 몸체에 새긴 아픈 상처의 흔적 그리고 서로 감싸 안은 듯한 구도에서 지난 역사의 아픔이 전해오는 듯했다.
남산공원 전망대에 서니 고성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성은 지리적으로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으로는 당항만이 깊숙하게 들어와 있고 남으로는 고성만이 가까이 있고, 그 사이에 너른 들판이 형성돼 있으며, 사천과 진주를 거쳐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고성지역에 선사시대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고, 소가야가 나라를 세웠던 것은 이런 지정학적 위치와 지형 덕분이었을 것이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은 남파랑길에서 제법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 고성 지역을 트레킹 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소가야는 고성이라는 지역을 이해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남파랑길13코스(20.7km) 고성읍내와 남파랑길31코스 일부(4km)(총 24.7km)
<배둔(석식,박,간편조식) - 마동호 - 거류면사무소(중식) - 화당마을회관 - 황리사거리 - (버스) - 고성시외버스터미널 - 송학동 가야고분 - 남산공원 - 똥뫼산 - 고성시장(석식,박,조식)
3.24일 07시 - 16시(총 9시간)
* 통영 안정 황리사거리에서 고성행 버스를 타고 고성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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