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가고 싶은 도시다.
통영은 스토리가 많은 도시다.
그리고 나에게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20대 중반 첫 사회생활을 한 곳이며, 신혼살림을 차린 곳도 통영이다. 나에게 통영은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친구에게도 통영은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 신혼여행을 다녀온 곳이라고 했다.
지난해 아내와 함께 남해안 여행 시에도 통영에 1박 2일 머문 적이 있었다. 그동안 통영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통영 다움을 잃지 않고 있었다. 통영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있으며, 오랜 역사와 독특한 문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곳이다.
통영은 통제영이 있는 고을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지명이다. 통영 사람들은 통영을 '토영'이라 부른다. 그리고 지명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과거 충무시와 통영군을 통합할 때 통합시 이름도 자연스레 통영이 되었다.
통영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에 통제영의 중심 건물인 세병관이 있었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경복궁의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라고 한다. 국보 305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건물 전체를 카메라 앵글에 잡기도 쉽지 않았으며, 50개의 붉은 기둥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그 웅장한 위용에서 통제영의 기상이 느껴졌다. 세병관은 만하세병挽河洗兵,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두보의 시구에서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이란 참화를 겪고, 전쟁 없는 세상을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세병관 왼편으로 작은 기와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통제영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병기와 물품을 제작하던 12 공방터였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나전칠기, 소목장, 통영갓 등은 지금도 그 명성이 알려져 있는 명품들이다.
근현대 통영에는 많은 문화예술인이 배출되었다. 젊은 시절 막연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의 마음으로 읊었던 '깃발'의 시인 청마 유치환, 이름은 존재의 방이란 의미를 깨우쳐준 '꽃'의 시인 김춘수, 아껴가며 읽었던 대하소설 '토지'의 박경리, 근현대 우리 민족의 아픔을 몸소 겪고 음악으로 표현한 윤이상 그리고 다도해의 물빛 화가 전혁림. 이들의 발자취와 기념관을 통영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어떻게 통영에서 이렇게 많은 예술가가 나올 수 있었을까. 통영이 아름답고, 땅과 바다에서 나는 물산이 풍부했기 때문이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통제영이 있었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통제사가 12 공방을 중심으로 산업을 장려하고 자치적으로 통치를 했기에 자연스레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것은 아니었을까.
유달리 서양의 근대문물을 빠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이런 독특한 환경 때문이었지 않을까. 80년대 초, 내가 처음 통영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젊은 교사, 직장인들이 모인 문학독서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통영에는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분위기가 오래전부터 폭넓게 형성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4월 중순 일요일, 통영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제법 붐볐다. 중앙시장에는 장 보려 온 사람, 구경삼아 온 사람으로 시장통이 좁았다. 통영의 봄 계절 음식인 도다리쑥국을 먹기 위해 전에도 가 본 적이 있는 여객선터미널 앞 남옥식당으로 갔다. 12시가 되기 전임에도 많은 손님들이 있었고, 살이 통통 기름진 도다리에 적당히 쑥을 넣어 끓인 도다리쑥국은 별미였다. 옛 여객선 부둣가에 자리 잡은 충무김밥집에도 사람들이 꽉 차있었고, 동피랑 가는 길목 꿀빵집에는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먹어보고도 싶었지만 눈팅만 하고, 시식용 꿀빵만 받아먹고 지나쳤다.
동피랑 벽화마을은 요즘 들어 통영에서 핫한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동피랑은 '동쪽 벼랑'이란 뜻이다. 좁은 비탈 골목길은 벽화로 장식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동피랑 꼭대기에 있던 통영성의 망루인 동포루를 복원하면서 주민들의 뜻을 모아 벽화마을로 재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꼭대기,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카페에 들렀다. 창문 밖으로 멀리 세병관이 보이고 옹기종기 집들이 내려다 보였다. 정감이 가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편 뭔가 애잔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가파른 언덕 계단길을 따라 서피랑 마을에 갔다가 박경리 생가터를 돌아 '윤이상과 함께 학교 가는 길'을 따라 내려왔다. 길 옆 벽에는 서피랑을 지켜온 할머니들 웃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젊었을 때 고생을 마이 해서
건강이 벨시리 안 좋아서 어데 놀러도 모댕긴다.
그래도 사는 날 꺼지 웃는 일이 많으모 참 좋겠다.
한 때 통영의 최고 번화가였던 항남 1번가를 지나 청마 유치환의 행복 우체국으로도 알려진 통영중앙동우체국 거리로 갔다. 청마가 이 우체국을 통해 시조시인 이영도에게 5천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고 하니, 그 순수하고 열정에 넘친 시인의 마음이 감탄스러웠다.
통영에는 걸어서 2,3시간이면 통영의 명소를 둘려볼 수 있고, 많은 예술인의 흔적과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문화관광 콘텐츠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데가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통영에 가서 다찌집에 가보자'
친구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혼자서 걷다 보면 그 지방의 식문화와 술문화를 경험하기가 어색한데, 친구와 함께하다 보니 스스럼없이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점이 있었다. 친구가 미리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알아 둔 다찌집, 대추나무집으로 갔다.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중년의 여성 두 분이 술상을 차려냈다. 기본 안주로 꼬막, 소라, 멍게, 전복, 호래기, 풋마늘, 생미역, 붉은생선구이, 부추전... 등등이 나왔고, 메인 안주로 밀치회가 나왔다. 혹시 하모회가 있나고 물었더니, 아직 철이 아니라고 했다. 밀치는 숭어과 바다고기로 지금이 딱 제철이라고 했다. 고소함과 쫄깃함이 일품이었다.
다찌술집은 통영 특유의 술 문화이다. 1인당 3만 원 기본에 술값 따로. 안주를 손님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결정한다. 어느 때 무엇이 가장 좋은 안주감인지 잘 아는 터줏대감 주인이 안주감을 결정하는 것도 좋은 마케팅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하지만, 통영의 서민들이 찾는 통영의 술 문화로 정착한 것 같았다. 좋은 친구가 있고 좋은 안주가 있으니, 얼큰하게 마셨다.
다음날 아침 일찍 호동식당으로 갔다. 술 마신 다음날, 통영 사람들이 속을 달래려고 찾는 졸복국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그런데 참 운이 좋았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업일인데, 그날은 서울에서 온 낚시꾼들이 하도 사정을 해서 문을 열었다고 했다. 고맙게도 사장님께서는 바로 앞 서호시장에서 싱싱한 생멸치를 사 와 생멸치무침을 덤으로 내놨다.
통영 앞에 우뚝 솟아있는 미륵산 정상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 해발 461m, 통영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었다. 남쪽으로는 욕지도, 서쪽으로는 사량도, 동쪽으로는 한산도가 보였다. 한려수도의 수려한 풍광이 삼면으로 펼쳐져 있었다. 견내랑에서 한산 앞바다를 지나 통영만까지 검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해안을 따라 형성된 통영시가지는 백색톤이었다. 검푸른 바다, 백색의 도시, 옹기종기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 미륵산에서 보는 통영은 참 아름다웠다.
남파랑길14코스(13.8km), 남파랑길15코스 일부(8.9km) 남파랑길28코스(13.8km) 남파랑길29코스 일부(4.0km)(총40.5km)
<고성버스터니널 - (택시) - 통영 안정사거리(점심) - 죽림해안로 - 삼봉산 - 견내랑 펜션(석식, 박, 간편조식) - 이순신공원 - 남옥식당(중식) - (택시,케이블카) - 미륵산정상 - 동화사 - (버스) - 동피랑 - 세병관 - 서피랑 - 다찌집(석식) - 숙소 - 호동식당(조식) - (배) - 제승당 - (배)-통영식당(중식) - 윤이상기념공원>
* 위 코스는 4.16-17일, 이틀에 걸쳐 여행하였으며, 이번 글은 굵은 글씨 지역을 대상으로 재구성하여 글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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