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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남파랑길10. 충무공을 만나려 가는 길

 

고성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안정 황리 사거리로 갔다. 통영방향으로 가는 남파랑길 14코스를 다시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고성관내 남파랑길 13코스에서 31, 32, 33코스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우선 음식점 거리 통뼈감자탕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좀 이른 시간임에도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들이 소주를 곁들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안정은 공단지구로 큰 조선소가 들어서 있었다. 지난번 트레킹 때 조용한 고성 거류 해안가를 돌고 얕은 해안가 고개를 넘어 통영 안정으로 들어서자마자 지축을 울릴 듯한 해머 소리에 놀란 적이 있었다. 충무공을 만나려 가는 첫 관문에서 조선소를 만난 셈이었다.

이번 트레킹에는 친구가 동행했다. 2년 전 해파랑길 트레킹 3박 4일을 함께했던, 여러모로 죽이 잘 맞는 친구다. 미국에 사는 딸이 요즘 미국에서 핫하게 인기가 있는 트레킹화를 사서 보내, 신고 왔다고 은근히 자랑을 했다. 하루에 25km가량 나흘 내내 걸어야 하는 트레킹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발이다.

공단지대를 지나 작은 골짜기 시멘트 포장도로로 들어섰다. 산과 들에는 4월의 봄기운이 완연했다. 길섶으로 작은 꽃들이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겨우내 나목으로 있던 나무들도 경쟁하듯 새 옷 몸치장에 분주해 보였다. 일 년 중 이맘때, 봄산이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울긋불긋 물든 가을산보다 4월의 봄산에 더 매력을 느낀다. 막 돋아난 나무의 새잎은 나무 종류에 따라 다르다. 졸참나무는 연노랑에 흰빛이 나고, 신갈나무는 연초록이고, 오리나무는 초록빛이 뚜렷하다. 은은하게 옅은 붉은빛을 띠는 나무도 있다. 4월의 산은 연노랑, 연초록 그리고 붉은빛 애벌레들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한다.

양지꽃, 보라 제비꽃, 노랑 민들레, 줄딸기, 탱자나무, 옥녀꽃대, 현오색, 산괴불주머니, 개별꽃 그리고 이름 모르는 작은 풀꽃 들... 두리번두리번, 어린 시절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듯 군데군데 봄꽃을 찾으며 걷는 것도 이른 봄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마을로 들어서자 짙은 분홍빛 꽃을 가지마다 가득 달고 있는 풀또기 나무와 백구도 눈길을 끌었다. 빈 집을 지키고 있는 백구는 짖지도 않고 낯선 여행자를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산길을 내려와 죽림만 바다와 만났다. 멀리 거제 쪽에서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호수처럼 잔잔한 내해이다. 바다는 맑고 파랬다. 멀리 떠 있는 양식장 흰 부표마저 아름답게 느껴졌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에도 봄기운이 전해져 왔다. 보이지 않는 바닷속에서도 봄을 맞아 왕성하게 생명활동이 일어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바닷물이 빠진 봄 햇살 속 모래자갈밭에는 옹기종기 아낙네들이 조개 캐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죽림에는 통영의 새로운 시가지가 형성되고 있었다. 구 도심지는 좁고 재개발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외곽으로 발전해 나가는 많은 도시들의 모습이 통영에도 나타나고 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가 또다시 얕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푸른 바다와 죽림 신시가지를 바라보면서 걸었다. 유자나무 밭도 나타났다. 자주 보지 않았던 나무였기에 생경했고, 지중해의 올리브 나무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유자나무 밭. 안온함이 느껴지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풍경에 취해 걷다가 그만 길을 놓치고 말았다. 해파랑길은 용남면 작은 반도에 있는 일봉산, 이봉산, 삼봉산을 넘어가야 하는데, 산 중턱 임도로 계속 걸어가고 말았다. 한참을 지나 알게 되었지만 되돌아갈 수 없어 계속 걸어 대안마을까지 갔다. 대안마을은 좁은 골목길에 군데군데 빈집도 방치돼 있었지만 호젓하고 전망이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시골집을 개량해 민박집으로 운영하는 집도 있었고, 마침 여행 온 남녀 커플도 만났다. 다행히 대안마을에서는 이봉산과 삼봉산 사이 능선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었다.

삼봉산에 오르니 넓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통영과 거제사이에 있는 바다였다. 신거제대교 아래 목적지 견유마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남파랑길은 견유마을에서 신거제대교를 건너 거제도를 한 바퀴 돌아 나오도록 되어 있지만, 견유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통영 쪽으로 되돌아 나오기로 했다. 고성 구간과 마찬가지로 통영을 통영답게 느끼기 위해서 선택한 여정이었다. 그냥 남파랑길을 완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파랑길을 느끼고 표현한다'는 나의 초심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5코스 일부와 27코스까지 12개 코스가 넘는 거제 구간은 건너뛰기로 했다. 거제도도 멋지고 걷고 싶은 곳이지만 해남 땅끝마을까지 걸은 후, 남파랑길 여행을 회상하고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걸을 작정이었다.

 

아침 6시 30분, 충무공을 본격적으로 만나는 여정에 올랐다. 거제대교 위로 아침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춘분이 지난 지 거의 한 달이 다돼가는 시점이라 낮은 많이 길어졌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는 견내량. 거제 사등면과 통영 용남면 사이에 있는 폭 2,3백 미터 되는 좁은 해협이었다. 아침햇살을 받은 견내량 좁은 바다는 빠른 물살을 타고 은빛 물결로 출렁이고 있었다.

남파랑길은 견내량이 언뜻언뜻 보이는 산 남사면 중턱길을 따라 이어졌다. 어제 지나온 길과는 산 능선을 사이에 둔 반대편이었다. 용남면사무소를 지나고,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을 지나고, 요즘 보기 드문 작은 보리밭을 지나 이순신 공원에 도착했다.

때마침 무희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춤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무슨 공연이 있나고 물었더니, 플래카드를 가리켰다. 통영 전통춤 공연단에서 승전무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통영 승전무는 이순신 장군의 충절과 덕망을 높이 받들고 승전을 축하하며, 군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추는 춤이라고 했다.

1592년 음력 7월 8일,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견내량에 집결해 있던 일본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 학익진 전술로 대파하였다. 일본 수군의 배 73척 중 47척은 격침되고 12척은 나포되었다. 반면 조선수군의 배 55척은 거의 손실이 없었다. 배 밑바닥이 평평한 조선의 판옥선으로는 물살이 거세고 암초가 많은 견내량보다 넓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전투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전술의 승리였다. 이 전투의 패배로 육지에서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가던 일본 육군은 해상 보급로 차단으로 기세가 껶였고, 임진왜란의 전세도 바뀌었다. 한산도대첩은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세계 해전사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는 해전이었다.

사즉필생死卽必生
생즉필사生卽必死

한산도 앞바다를 굽어보는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서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음날 아침 8시 배를 타고 한산도 제승당으로 들어갔다. 배 위에서 보는 제승당 숲은 특별했다. 잔잔하고 검푸른 바다 너머 검은 소나무 숲에 감싸인 초록의 숲은 또 다른 작은 섬처럼 느껴졌다. 신비롭기까지 했다. 4월이라는 계절적 요인도 있겠지만 부드러운 곡선의 활엽수 숲은 휴식과 안식의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배는 8시 30분쯤 도착했고, 제승당 입장은 9시부터 가능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안내지도를 살펴보고, 주변의 경관을 둘려보고... 제승당을 들어가기 전에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참배로를 따라 들어갔다.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참배로는 특이하게 붉은 소나무 숲이 덮고 있었다. 보통 바닷가에는 검은 해송이 자라는데, 여기는 왜 적송이 많지? 고맙게도 궁금증을 해소해 줄 안내판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의 적송으로 충무공 이순신께서 거북선과 판옥선의 건조 시 주요 자재로 사용하였다.

그러고 보니 제승당 주변 산은 소나무 순림純林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대부분 우리나라 산에서는 소나무가 활엽수와의 경쟁에서 밀려 사라지고 있고, 특히 남부지방 산에서는 그 정도가 심한데 한산도는 오히려 활엽수는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소나무였다. 아마 오래전부터 소나무를 심고 가꾸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수루에서 바라보는 한산도 앞바다는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수루 앞 숲 가운데 우뚝 솟은 참나무 한그루가 충무공의 우국애민憂國愛民의 마음을 전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호남지방은 나라의 울타리라 만일 호남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본진을 한산도로 옮겨 바닷길을 가로막을 계책을 수립하였습니다.(충무공 편지 중에서)

한산대첩 승리 후, 삼군수군통제사로 제수된 충무공은 여수에 있던 전라좌수영 본영을 한산도로 옮겨 3년 6개월간 바다를 지켰다. 그때 '밤낮으로 계책을 의논하고 약속한다'는 의미로 운주당을 세웠다. 그 후 모함으로 관직을 박탈당했고, 칠천해전 참패 후 운주당은 완전 소실되었다. 세월이 흐른 후, 운주당은 중건되었고 제승당이라고 재명명되었다고 했다.

36년 전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시고, 아내와 아들 둘과 함께 제승당에 왔었다. 그 당시에 아버지께서는 유별나게 통영갓을 쓰고 오셨다. 안 방 윗목 천장에 매달려 있던 태극문양이 그려진 갓집이 아직도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버지는 족보에 관심이 많으셨고, 풍수 약초 목공 등등 다방면에 아는 게 많으셨지만 세상살이에는 서툴었셨던 것 같았다. 거의 쉰둥이 막내로 태어난 나에게 아버지는 어려운 분이셨다. 그런데 요즘 거울 속 내 모습에서 아버지 모습이 보여 깜짝 놀라곤 한다.

남파랑길14코스(13.8km), 남파랑길15코스 일부(8.9km) 남파랑길28코스(13.8km) 남파랑길29코스 일부(4.0km)(총 40.5km)
<고성버스터니널 - (택시) - 통영 안정사거리(점심) - 죽림해안로 - 삼봉산 - 견내랑 펜션(석식, 박, 간편조식) - 이순신공원 - 남옥식당(중식) - (택시, 케이블카) - 미륵산정상-동화사 - (버스) - 동피랑 - 세병관 - 서피랑 - 다찌집(석식) - 숙소 - 호동식당(조식) - (배) - 제승당 - (배) - 통영식당(중식) - 윤이상기념공원>
* 위 코스는 4.16-17일, 이틀에 걸쳐 여행하였으며, 이번 글은 굵은 글씨 지역을 대상으로 재구성하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