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좀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고깃국을 내놨지만, 떠나버린 식욕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단지 맥주는 입에 맞고 술술 잘 넘어갔다. 맥주 도수 9도, 우리나라 맥주 4,5도에 비해 훨씬 높았다.
딱 소맥 맛이었다.
산악차량을 타고 내려와 콕투스 트레킹을 시작했다.
해발 2,000m에서 시작해서 최고 높이 2,400m까지 올랐다 내려가고, 거리는 약 11km였다.
임도를 따라 걸었다. 자작나무, 낙엽송, 소나무, 독일가문비 나무 숲이 빽빽하게 이어졌고, 길옆으로는 때를 만난 야생화가 예쁘게 피어있었다. 임도에는 사람이 다닌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차량 바퀴 자국만 깊이 파여 있었다.
2,400m 마루턱에 올라서니 전혀 다른 기막힌 풍경에 압도 당했다. 끝없이 펼쳐진 야생화 산록.
이런 풍경은 본적도 없고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미친 풍경이었다.
백두산 '7월의 야생화 바다'에서 감탄했었는데, 차원이 다른 야생화 풍경이었다.
봄여름이 짧아 봄여름 꽃이 한꺼번에 피었다가 결실을 맺어야 하기에 갖가지 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 바람에 춤추고 있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오래전 구체구를 보고 미맹美盲에 걸렸다고 한 적이 있었다.
또다시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다시 카라콜로 돌아와 러시아 정교 교회와 이슬람 사원을 둘려 봤다.
카라콜은 청나라 때 중국쪽에서 텐산산맥을 넘어온 신장위구르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란다.
이슬람 사원은 중국식으로 지어진 것이었다.
이번 여행의 중요한 일정은 거의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무리 수순이었다.
고급 음식점에서 화려한 만찬이 준비 돼 있었다.
키르기스스탄 식 고기 성찬 그리고 보드카 술.
맛있게 먹고 거나하게 취했다.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가수와 악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호텔로 돌아오니 홀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눈길을 끈는 것은 키르기스스탄의 건국 영웅인 '만나스'의 일대기를 혼자서 부르는 것이었다. 문자가 없어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노래였는데, 우리나라 판소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나스의 아들과 손자 3대까지 노래로 부르는데, 최장 12시간까지 부른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홀로 시내 산책에 나섰다. 어젯밤에 강력한 소나기가 지난 간 후라 하늘은 맑고 공기는 산뜻했다.
길에는 아직 사람 하나 없었다. 멋없이 높게 자란 버드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집들은 낡고 볼 품이 없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정이 느껴지는 마을이었다.
간선도로를 벗어나 중심도로로 들어서니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하얗게 눈이 쌓인 천산산맥이 마을은 감싸고 있었다.
이 풍경을 높은 곳에서 보면 기막힐 것 같아서 얼른 호텔로 돌아와 옥상을 찾았다. 그런데 옥상은 문이 잠겨 있었다.
할 수 없어 6층 계단과 복도 창문너머로 그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산악마을 풍경이었다.
호텔 옥상에 루프탑 카페를 만든다면 산악마을 카라콜의 명소가 될 터인데....
버스를 타고 이식쿨호수 연안을 따라 달렸다. 차창 밖 풍경은 지금까지 봐 온 이식쿨 주변과는 달리 푸른 들판이 이어졌다.
옥수수밭도 보였고, 감자밭도 보였고, 그냥 초지도 보였다. 이곳만 보면 키르기스스탄은 발달한 농업국가로 착각할 것 같았다.
키르기스스탄은 전국토의 90%가 산이고, 유목국가이다. 한때 소련연방의 일원이었을 때 이식쿨 주변에 밀을 집단 재배하였었는데, 독립 후 초지로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키르기스스탄 남자들은 농사짓는 것을 창피하게 느끼는 풍조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드디어 마지막 숙박지 촐폰아타에 도착했다.
촐폰아타는 이식쿨 호수 연안에 있는 휴양도시로 구소련연방 시절부터 각광을 받았던 곳이다.
유람선을 타고 이식쿨 호수로 들어갔다. 끝없이 넓었다. 동서남북 사방이 찬산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 한가운데 있는 산정 호수였다. 넓이는 제주도의 3.3배라고 한다. 들어오는 강은 있어도 흘러나가는 강이 없다. 약간의 염도가 있고, 겨울에도 0도 이하로 수온이 내려가지 않아 얼지 않는다고 한다.
한참을 나가니 수평선이 보이고, 그 수평선 너머 눈 덮인 천산산맥이 눈에 들어 왔다. 하지만 아쉬웠다. 푸른 호수 위 선명한 눈 덮인 천산 산맥을 보고 싶었는데, 옅은 구름이 가로막아 윤각으로만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선명한 눈 덮인 천산산맥을 볼 수 있을까? 이식쿨호수로 나갔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산산맥은 진면목을 보여 주지 않았다.
날씨는 쌀쌀해 패딩을 입었는데, 이식쿨호수는 따뜻했다. 아침 일찍 수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식쿨 호수에서 수영을 하면 1년 동안 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 리조트는 잠시 머물다 가는 게 아니라 며칠 휴양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도중에 작은 박물관에 들리고, 선사시대 암각화 공원에도 갔었다.
키르기스스탄 역사는 좀 특이했다.
원래 키르기스인들은 알타이산맥과 예니세이강 사이에 살았었다. 13세기 건국의 영웅인 만나스가 부족을 통합해 지금의 키르기스스탄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주의 시기와 배경에는 궁금증이 많이 남았다. 세력다툼에 밀려 이주했는지, 새로운 초지를 찾아 이주한 것이지.
1991년 소련연방이 해체될 때 독립하였다. 인구는 약 600만 명, 국민소득은 1인당 1,300$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다. 외국 근로자로 나간 인구가 100만 명이고, 이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전체 국민소득의 약 30%에 달한다고 한다.
정치적 혼란기를 겪었고, 2번의 튤립혁명이 발생해 정권교체가 이루졌다.
2번째 튤립혁명 때는 대통령궁에서 조준사격한 총탄에 맞아 1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었다. 아픈 역사와 함께 정권교체라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독재국가나 다름없는 주변의 나라들에 비해 정권교체라는 소중한 정치적 경험을 간직하고 있기에 정치,경제적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민주화 지표는 오히러 악화되고 있다고 하니, 민주주의는 험난한 과정인가 보다.
비슈케크 중심부에 있는 대통령궁, 2차 튜립혁명 사망자 추모탑, 정부종합청사, 렌닌 동상을 철거하고 세운 만나스 동상.
이번 여행에서 많이 보려고 했다. 버스 이동 중에도 자지 않았고, 시간 나면 주변 산책을 했다.
낯선 이국땅에서는 '아는 만큼 보인다'가 아니라 '보는 만큼 알게 된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PS 돌아와서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보건소 PCR 검사는 음성이었지만 양성일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은 아직도 여전하다.
아내는 앞으로 해외 고산 트레킹은 절대 못 간다고 선언을 했고,
난 억울하지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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