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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남파랑길29. 강진 고려청자 도요지 가다

멀리 주황색 아치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진에서 고금도로 넘어가는 고금대교였다. 소설비에 흠뻑 젖었던 장흥땅을 벗어나 강진땅에 들어섰다. 강진땅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으련가, 설렘이 일었다.

오후 2시쯤 마량항에 도착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숙소를 정한 뒤 빈 몸으로 남파랑길 탐방에 나섰다. 마량항은 남해안 해상 교통의 요충지였다. 먼 옛날 통일신라 때 장보고가 활약하던 시절 청해진과 더불어 일본과 중국을 연결하는 거점이었으며, 고려말 이래로 영호남의 세곡을 실은 조운선이 통과하던 관문이었다.

모래톱 같은 좁은 곶을 돌아서자 아름다운 바다풍경이 펼쳐졌다. 작은 바위섬 주변에 주황색 돔이 떠 있었다. 어촌 체험마을에서 운영하는 해상펜션이었다. 어촌 마을에서는 낚시 체험, 바지락 캐기 체험, 통발 체험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양식장 대나무 막대가 촘촘히 해안을 따라 꽂혀 있었다. 그 풍경에 눈길이 계속 갔다. 바다 위에 설치한 거대한 데코레이션 장식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놓은 목책 같기도 했다.

어스름 땅거미가 내려앉을 즈음 다시 마량으로 돌아왔다. 마량 시장에서 귤 한 바구니를 샀다. 식사 후나 쉴 때 과일을 먹지 못해 아쉬웠었는데, 당분간 배낭무게는 더해지겠지만 좀 더 개운한 기분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날 택시를 타고 가서, 전날에 이어 트레킹을 다시 시작했다.

간 밤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내렸다.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었지만 안개 비가 흩날렸고 차가운 바람도 제법 강하게 불었다. 마을어귀 느티나무 정자숲 마당에는 가는 계절이 아쉬워 매달려 있던 잎새들도 끝내 버티지 못하고 수북이 떨어져 있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만추의 쓸쓸함이 진하게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길섶에는 도깨비바늘과 산국이 꽃을 피운 채로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밤새 찬비를 흠뻑 맞아 생기를 잃고 축 처진 상태로 이리저리 너부러져 있었다. 한줄기 나팔꽃도 호기심 많은 철부지 여학생처럼 꽃을 피웠다가 너덜너덜 처절하게 망가져 있었다. 안쓰러웠다.

도깨비바늘은 남파랑길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식물이었다. 어떤 식물보다 강인한 생존력을 가진 것 같았다. 도깨비바늘은 한여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우고 가시가 달린 씨앗을 맺는 식물이다. 도깨비바늘 씨앗이 여행자의 바짓가랑이에 달라붙어 옮겨진 덕분에 이리저리 퍼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추운 11월 하순에도 씨앗을 달고 있으면서 또 계절을 모르고 꽃을 피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국으로 떠난 태양을 끝내 잊지 못해서일까. 그런데 이 추운 늦가을에도 꽃을 피우는 무모한 능력이 도깨비바늘의 또 다른 생존력인지도 모르겠다. 혹독한 기후 변화에서도 생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강인한 능력이 되었지 않았을까. 진화는 설계된 것이 아니고 우연의 산물이라는 말이 어렴풋이 이해가 될 듯했다.


강진만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가 대구면 소재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남파랑길 안내 리본은 계속 해안을 따라가라고 안내하고 있었으나, 강진 고려청자 도요지를 가기 위해서였다. 오래전부터 고려청자 도요지가 개성에서 먼 남쪽 강진땅에 있었을까, 무척 궁금했었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도요지는 남파랑길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대구면사무소 앞 뜰에는 멋진 단풍나무가 면사무소건물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멋지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들어가 봤더니 70년 전 이곳 면장이 심었다는 표지석이 있었다.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남아있는 것인가.

면사무소 뒤를 돌아가자 수동마을이었다. 마을 안내석에는 약 400년 전에 해남 윤 씨가 입촌하여 큰 마을을 이루었다고 쓰여 있었다.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 보니 강진만 건너 마을에 살던 해남 윤 씨 윤시성이 처가 마을인 이곳으로 입촌하여 형성된 마을이었다. 조선 시대 처가입향妻家入鄕, 처갓집 살이로 번창한 마을이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도 처가입향의 한 사례라고 하니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번창한 마을이 드물지 않았던 것 같다. 개척입향開拓入鄕, 직접 황무지를 개척해 일군 마을인 남파랑길 33코스 고성 학동마을과 대비되는 곳이었다. 마을 안쪽에는 이 마을과 거의 역사를 같이하는 아담한 동백숲도 보존되어 있었다.

마을 뒤편에 기와집 고택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여택정과 강회정이었다. 이곳에서 동네 주민들이 모여 회의도 하고 의견을 나누는 향촌공동체의 장이었다고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마을회관 같은 곳이다. 여택정은 중앙에 수납공간인 광이 있고, 양측에 누마루가 있는 독특한 구조로 돼 있었다. 초기에는 방과 부엌으로 구성되었는데 증개축하면서 현재와 같은 구조로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건물 한가운데 방이나 부엌이 있는 구조는 부안 읍성 객사와 유사했다.

강진 고려청자 도요지는 양지바른 산자락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진입로는 왕복 4차선, 중앙 분리대에는 잘 자란 반송이 줄지어 심겨 있었다. 고려청자 도요지, 신비로울 것 같은 기대감을 갖고 찾았는데 넓은 진입로에 들어서자, 뭔지 모르게 어색한 건물 구조와 배치에 마음이 허해졌다. 고려시대 그리고 도요지로서 적합한 요건을 갖춘 특별한 땅, 시공을 뛰어넘는 특별함이 분명히 있을 터인데 그것을 공감할 수 없었다. 청자 도요지에서 비색 청자의 신비로움을 기대한 것은 애시당초 욕심이었을까.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로 이어지는 9세기∼10세기 경 중국 절강성 월주요의 청자 제작기술을 도입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청자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강진에서는 다른 지역의 생산품보다 상대적으로 품질이 좋은 청자를 생산하여 개성의 왕실과 전국의 귀족, 사찰 등의 청자 수요를 전담하는 고려청자 생산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 고려청자박물관


강진은 통일신라 시대 해상교통의 요충지였기에 중국의 선진 도예 기술을 빨리 도입할 수 있었으며,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어느 지역보다 좋았기에 고려시대 수도 개성에서 먼 변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자생산의 중심지가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12C,13C 전성기를 구가했던 강진 청자는 14C이후 원의 내정 간섭과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쇠퇴기를 겪었다. 조선초 도자기 장인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조선도자의 명성으로 이어갔다고 했다.

도요지 안쪽 길가에는 500살이 넘는 푸조나무가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영험한 기운을 지닌 당산나무로 여기고 마을에서 매년 당산제를 올리고 있다고 했다. 이 푸조나무는 강진 도요지의 흥망성쇠를 눈으로 지켜봤을 것이다.


다시 해안길로 나와 남파랑길과 만났다. 강진만의 푸른 물결 너머로 가우도가 보였고, 강진만 건너편 강진땅도 보였다. 저만치 앞에 깔맞춤 차림을 한 남녀 두 사람이 걷는 모습이 보였다. 좀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 보니 서울에서 온 내 또래의 부부였다. 아름답게 보였다. 같은 취미를 가진 것도 그러하지만, 걸을 수 있는 건강을 부부가 같이 가진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부는 다음날 숙소에서 다시 만났다.

가우도는 강진만에서 유일한 유인도라고 했다. 강진만 양 연안에서 보도다리를 통해 건너갈 수 있었고, 짚라인도 설치돼 있었다. 점심 먹기엔 좀 이른 시간이지만 혹시 식당이 있는가 둘려보아도 카페만 눈에 띌 뿐 보이지 않았다. 잠시 쉬면서 에너지바에 귤로 에너지를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바닷가 야산, 볼품없는 소나무 산길을 지나고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세심정을 지나자 차량통행이 많은 도로와 만나게 되었고, 얼마쯤 더 걸어가자 고맙게도 돈까스를 파는 식당이 나타났다. 주차장에는 제법 많은 차들이 주차해 있었고, 식당 안에도 빈자리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았다. 돈까스는 양도 많았고, 맛도 좋았다.

드디어 강진읍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푸른 바닷물은 물려가고 잿빛 갯벌과 누런 갈대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갈대 군락지 주변을 흰 겨울철새들이 줄지어 걷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뒤뚱뒤뚱. 이제 막 긴 여행을 마치고 도착한 후, 그 기쁨에 못 이겨 기차놀이 군무를 추는 듯 보였다.

강진읍이 가까워지자 갈대밭은 무성해졌고, 철새들의 숫자도 많아졌다. 들판에도 많은 철새들이 하얗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진읍으로 가는 뚝방길에는 조류인플루엔자 확산방지를 위해 출입을 통제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무척 난감했다.

남파랑길 80코스 일부(10.0km), 남파랑길 81코스(16.0km), 남파랑길 82코스(16.3km) (총 42.3km)

<덕촌간척지들 - 마량항(중식, 석식, 박, 조식) - 남호마을회관 - 대구면사무소 - 강진여택정 - 고려청자도요지 - 고바우공원전망대 - 가우도다리 입구 - (중식) - 보련마을회관 - 만복마을회관 - 강진>

* 오후 2시쯤 마량항에 도착 후 숙소를 정하고 3시쯤 남호마을회관 부근까지 트레킹하고 다시 마량으로 돌아와 다음날 택시를 타고 이어 트레킹을 함

11.22일 11시 - 16시 30분, 11.23일 07시 30 - 15시 30분(총 13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