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츠부르크는 소금의 산이란 의미로 유럽의 소금 무역 중심지로 번성했다.
8세기 주교청이 설치된 후 주교령이 되었으며 교황이 임명하는 주교가 다스리는 카톨릭 문화의 중심지로서 발전했다.
모짜르트의 출생지로 1920년부터 해마다 여름철에 '짤츠부르크 음악'제가 열린단다.
먼저 미라벨 정원을 찾았다. '아름답다'는 뜻을 지닌 미라벨 정원은 볼프디트리히 주교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주교는 교황청에 결혼을 허략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거절당했지만 두 살람사이에는 15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한다.
주교가 정부를 두고, 자식까지 낳았다니.....
당시 카톨릭사회에서 그 정도의 속세적 행태는 흔했다고 한다.
미라벨 정원은 사운드오브뮤직의 주 촬영지였다. 마리아가 일곱명의 자녀와 함께 도래미송을 불렸던 곳이다.
소금배가 다녔던 잘차흐 강에서 바라본 짤츠부르크 성. 제2차대전때도 운 좋게 폭격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간판거리. 이곳의 간판은 문자로 표시돼 있지 않고 상품의 모형을 뜬 조형물이 걸려 있다.
중세시대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옷가게는 옷 모양의 간판, 우산 가계는 우산모양의 간판이 걸려 있다.
이 거리안에 모짜르트 생가가 보존돼 있다.
간판거리는 집들이 다닥다닥 삐툴삐툴 붙어 있다. 여기 뿐만 아니라 뉘렌베르크, 프라하의 황금소로 그리고 중세풍의 거리는 다 비슷했다.
불편할 것 같기도 한데,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증개축시에도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했다.
간판거리 건물 집붕밑 왼쪽에는 건축년도가, 오른쪽에는 개축년도가 표시돼 있었다.
우리와 달리 다닥다닥 건물을 이어 지은 것은 전시 방어용으로 활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됐다.
전염병 페스트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 것도 이런 건물 구조때문인 것 같기도 한데...............
수도원에 안에 있는 800년 된 쉬프트스켈러 음식점에서 황제 다이어트 소고기 수육을 먹었다. 기름끼가 없는 살코기라 입에 맞지 않았다.
카메라 충전이 나가 사진은 못 찍고, 메모만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