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 수술받은 막내
광일아 잘 있나
이번주에 서울 집에 가서, 수술하느라 고생하고 입맛도 떨어졌을 법한 너에게 맛있는 거라도 사주려고 했는데
아빠가 참석하지 않으면 안되는 행사가 생겨 올라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요즘 아빠도 감기가 들어 몸 컨디션도 안좋은 참에 집에서 가족도 보고 쉬었다 오려고 했는데, 아빠 마음먹은 데로 안돼 나도 짜증 바가지다.
세상살이는 자기 하고픈 대로 안 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 세상사인 것 같다.
네가 맹장염 수술을 하리라고 우리 가족 모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
네가 조심했더라면 맹장염이 안 걸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도 어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너가 유별나게 우리 가족 중 다른 사람보다 음식을 짜게 먹는 것도, 과식이나 편식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나이로 보면 아빠가 너보다 훨씬 많으니, 걸릴 확률은 오히려 아빠가 높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이처럼 앞을 잘 내다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단다.
아빠는 요즘 부쩍 예정설을 믿는다. 사람의 미래는 어느정도 예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많이 갖는다.
누구는 인간의 삶은 95%가 예정되어 있고, 5%는 자기가 개척하는 것이라는 말을 어디서 본 것 같다.
퍼센트가 높고 낮을 수는 있겠으나 아빠는 이 말에 상당히 동조한다.
어떤 한 인간의 현재는 그 사람의 유전자, 소속 그리고 버릇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예술에 재능이 있다든지, 수학에 소질이 있다든지, 체육에 장기가 있다든지 하는 것은 결국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유전자, DNA의 결과이며
그리고 소속도 스스로 결정되기 보다 가족이라든지 부락이라든지 학교라든지 자기의 의지보다도 주어지는 것이 더 많다고 본다.
또한 버릇도 자기가 속한 가정, 사회, 국가의 영향이 훨씬 지배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니.
이런 점에서 볼 때 어떤 개인의 성패는 선천적인 면이 많다고 본다.
세계에는 너 또래의 아이들이 얼마나 많겠나.
그들은 미국에서, 한국에서, 프랑스에서, 이디오피아에서, 아프카니스탄에서도 태어났다. 그런데 그들 스스로 국적을 선택하여 태어 났겠나.
이런 점에서 광일이는 어느정도 너의 삶이 정해져 있다고 봐도 되겠다.
한국 서울에서 태어나, 중류 이상의 생활을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다는 조건이 너에게 주어진 셈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만, 이것은 행운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런데, 광일아. 세상살이가 주어진 조건대로만 가지 않는다는 데 삶의 묘미가 있는 것 같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고, 머리 좋은 사람도 남들 밑에서 고생하며 살아 가는 것을 우리는 신문에서나 주변에서 종종 봐 오고 있지 않나.
예정돼 있는 대로 부자는 부자로, 천재는 유명한 학자로 산다면 오히려 세상은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여기에 신이 인간에게 항상 노력할 수 밖에 없도록 5%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 둔 것 같다.
이 5%는 숫자상으로는 얼마 안되지만, 인생에 있어 95% 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95%의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머리와 부를 믿고 노력하지 않은 실패자가 참으로 많다.
광일아, 너에게 주어진 조건은 남들에 비해 못하지는 않다고 본다. 너의 노력이 뒷받침 될 때 그것은 더욱 빛날 것이다.
남들 공부할 때, 수술하고 회복하느라 시간을 빼았겼을 줄 안다.
그래도 초조해하지 말고 따박따박,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면 좋은 결과가 반드시 찾아온다.
앞으로 남은 1년 남짓 하루에 일점씩 일점씩 올린다는 생각으로 규칙적으로 그리고 소처럼 우직하게 목표를 향해 전진하기 바란다.
아빠가 다음주 중에 서울 가면 맛있는 것 사줄께.(2002.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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