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차장
처음 만나 나를 괴롭혔고 뒤에는 기쁘게 한 사람이 김영진 차장이다. 김차장은 금년도 승진해 나와함께 하동으로 발령받았다. 고향은 경북 상주인데, 아마 그곳에서는 나름대로 인정 받았으며, 여러 경로를 통해 경북에 근무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남에 그것도 제일 오지인 하동에 발령받자 상심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차장이 3명이나 같이 근무하게 돼 차장 한명은 과장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어 김차장에게 그렇게 업무분장을 했더니 근무의욕마저 상실했던 것 같다.
대구에서 승진해 같이 발령받은 장차장이 김차장의 어려운 사정을 귀뜸해주었지만, 사무소 형편상 어쩔 수 없고 중앙회 인력운용 방침도 그러한지라 흘려 들었는데 본인의 고통은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결국 주말 집에 간다는 사람이 병을 핑계로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며칠후면 오겠지 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소문에는 오래전에 우울증을 알았는데 그게 재발하였다고 하였다.
어렵게 마친 업무분장도 다시 할 수 밖에 없었고, 계속 같이 근무한다는 것도 어렵다고 판단돼 책임자들과 의논해 지역본부에 인사보고까지 하였다. 본인의 문제도 문제지만 사무소를 책임지고 있는 지부장으로서는 어떻게 인력운용을 다시 할 것인가가 당장 걱정거리였다.
일선 사무소장으로서 가장 크게 느낀 어려운 점은 뭐니뭐니해도 인력 운용이라고 생각한다. 본부에서는 다들 한사람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기에 직원 하나하나가 톱니바퀴처럼 잘 움직이고 있지만 일선 영업점을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작년에 근무했던 도동지점에서도 직원관리와 업무분장이 제일 골칫거리였고, 이곳 하동에서도 나를 괴롭히는 첫번째 과제가 업무분장이었다. 차라리 없는 편이 나은 직원이 있는가 하면 제 역할을 못하는 지역출신 고참 직원이 있고, 개인적으로 빚이 많거나 하여 중요한 일을 맡기기에는 불안한 직원도 있다.
하동에서는 신규직원이 2명이나 발령받아 더더욱 업무분장하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김차장이 직원 한명과 함께 채권관리 업무를 전담토록 했었는데 김차장이 저렇게 나자빠지니 궁여지책으로 2층 경제담당 차장이 겸임토록 하였는데 전혀 일이 돌아가지 않고 헛돌고 있었다.
부임한지 벌써 두달이 지났는데도 영업점에서 제일 중요한 채권관리업무가 꽉 막혀 있고, 게다가 특수채권회수담당자도 하동은 기름값도 안나온다고 오지도 않고 손 놓고 있으니 답답하고 답답해 내가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김차장 부인이 직접 군지부를 찾아왔다. 첫 눈에 활달하게 보였다. 남편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며 자기남편은 무능한 사람이 절대 아니란다. 나에게는 무책임하며 능력없는 사람으로 각인되고 있었는데. 사무소 형편도 형편인지라 부인의 말을 믿기로 했고 한편 고맙기도 했다.
다시 간부회의를 소집해 업무분장 논의를 해 출납 박과장이 채권관리 실무 책임자를 맡고 김차장이 전체를 통괄하기로 결정했다. 부임해서 3번째 업무분장에서 마무리를 지은 셈이 됐다.
다시 출근하게 된 김차장은 그간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헬쓱하고 눈주위에도 병색이 역력했다. 안스럽기도 했지만 믿음이 안가기는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박과장에게 없는 셈치고 책임지고 일하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김차장이 시간이 지날 수록 과장들 사이에서 능력 있는 차장으로 인식되고, 직원들에게도 인기있는 차장으로 바뀌어 갔다. 채권관리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많은 실전경험과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래서 과장들이 그 노하우 한 수 배우려고 애썼다. 회식후 2차 노래방, 볼링장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 줬다. 부인의 말이 허풍이 아니었다.
김차장은 4/4분기 결산을 앞두고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몇 년 곪아 온 골치 아픈 부실채권을 용하게도 받아내고, 관내 화개농협 거액 부실채권도 같이 해결해 줘 조합장으로부터 고맙다는 식사대접까지 받았다. 김차장은 첫 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덕분에 부실채권 회수 장려금으로 노조 활동비도 보태주고 금년 1월 멋진 영덕 대게 울진 동해바다 여행도 같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