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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의 아침

내가 주례를 섰다

내가 주례를 섰다

 

내가 주례를 섰다.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를 보고도, 잘 못보고 그랬겠지 했었는데.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 주례 서 달라고 했을 때는 묘한 느낌이더라. 이제 어쩔 수 없이 그런 위치에 왔는가 보다. 난 지금도 어리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막내로 자라 선천성 소아증이 있었는데,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어른이 되었다.

 

우리 직원들에게 결혼식 때 주례사 내용이 기억나냐고 물으니 대부분 생각 안난다고 하더라. 하기야 나도 생각 안난다. 마음이 들떠 있는데, 귀에 들어오는 게 있을까 만은. 그래도 주례를 부탁받고 되게 고민되더라. 뭘 말할까. 내 나이에 나보다 훌륭하고 연세 많은 분들 앞에서, 꼭 공자앞에서 문자쓰는 것 같기도 하고. 인터넷을 뒤져 보기도 하고, 며칠을 끙끙 알았다.

 

결국 내 얘기를 쓸 수 밖에 없었다. 결혼초에 많이 싸웠다는 얘기. 그 싸움에서 나는 지기만 하고 한 번도 못 이긴 것 같은데, 지는 싸움을 하라는 얘기 등등. 이들 신혼 부부는 귀 담아 듣지 않았겠지만 내가 살아온 궤적을 되돌아 보고 누설한 셈이 되었다.

 

하동에서의 생활은 다양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한마디로 전혀 색다른 경험이었고, 힘 들 때가 많았다. 일선과 중앙 본부의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충은 알겠지만, 지역농협의 노조가 중앙회를 공격하는 최 일선에서 서글픔, 분노, 안타까움을 함께 느꼈다.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지고, 구조조정의 고통은 피하고 싶고, 그래서 중앙회를 공격해서 활로를 찾으려고 하는 지역농협. 예나 다름없이 일방적으로 계획하고, 지도하고, 지시하려는 중앙회. 지역농협은 지역농협 대로, 중앙회는 중앙회 대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작금의 농협 모습. 이 갈등의 골은 싶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시간 가기만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중앙본부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본다. 집안에서도 터러블이 생기면 젤 윗 사람이 솔선수범해야 잘 풀리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권위를 죽이고 일선 중심으로 생각을 먼저 바꾸고, 제도를 바꿀 때만이 지금의 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많은 분들이 염려 해준 덕분으로 이곳, 하동의 문제는 점차 안정되고 있다. 아직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지만, 문제가 확산되던 국면에서 해결되는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니 한결 여유도 생긴다. 내가 처음 하동에 왔을 때 느꼈던 꽃피고 피는 하동, 산좋고 물맑은 청정 하동의 모습이 다시 느껴진다.

 

보통 격주간으로 서울에 올라간다. 5일근무 실시이후 아무 일 없이 이곳 하동에 있는 것은 여러 가지 고통스럽다. 특히 식사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굶기 일쑨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 현기증이 나는 것이 영양부족 아닌지 고민된다.

 

그래도 즐겨움도 많다. 언제 귀두라미 소리를 귀찮게 듣고, 도 자유를 만킥할 수 있겠는가?

또 언제 내 듯대로 사무실을 경영할 수 있겠는가? 또 언제 농촌 현장의 소리를 이렇게 가깝게 들을 수 있겠는가? 또 언제 중앙본부를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그래도 보람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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