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젊은 직원 두명, 최병기과장과 곽태은대리와 함께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 날씨 좋은 날을 택일한다고 9월 중순을 잡았는데 TV에서는 저녁부터 비가 온다는 반갑지 않은 기상예보를 했다. 악천후가 예상됐지만 젊은 패기와 그간 지리산을 오르내린 나의 경험을 살려 강행군 하기로 했다. 마침 통영 문화동 강현우지점장이 지리산 등산을 한다기에 천왕봉까지 우리와 함께 동행이 되어 주었다.
등산로는 대원사 계곡 안쪽에 있는 조개골에서 중봉을 거쳐 청왕봉에 오르는 등산객이 비교적 적은 등산루트를 택했다. 아침을 먹고 8시30분터 등산 시작. 거리는 중산리코스 보다 길지만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아름다워 산행의 재미는 지리산 동북 등산로 중에서 으뜸인 것 같다.
두세번 올라 본 길이라 자신이 있어 내가 선두에 섰다. 등산로에는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없어 약간 불안하기도 했지만, 모두들 단단히 마음 먹고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겼다. 등산로는 지난번 폭우를 동반한 태풍피해로 엉망으로 파헤처져 수로로 변해 있었었다.
길을 잘 안다고 선두에 섰지만, 산을 오르면 오를 수록 등산로를 식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비로 등산로가 유실되거나 길 같은 수로가 생겨 몇번을 잘못 들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다가 지리산 중턱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어 우리 앞서 간 사람들이 달아 논 길 안내 리본을 보고 따라 갔는데 오히려 길도 없는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었다. 강지점장은 지리산 첫 등산하는 고객들을 모시고 왔고, 나는 시간 계획대로 등산을 해야만 종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는데, 어찌해야 할지 암담했다.
하산하기 보단 우선 등산로를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에 지도로 현재 위치를 추정하고 능선을 타기로 했다. 추정이 맞다면 치밭목산장이 나온다. 강지점장과 내가 앞장서서 길을 열고 나갔다. 능선에는 사람의 흔적은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났고 멧돼지가 할퀸 흔적, 배설물이 군데 군데 보였다. 어렵게 어렵게 능선을 넘고 넘으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예상한대로 치밭목산장에 도착했다. 1시간 이상 길을 헤맨 셈이었다.
천왕봉까지는 보통 때 보다는 훨씬 힘들게 올랐다. 오늘도 앞으로 가야 할 길이 훨씬 많이 남았고, 내일도 오늘 만큼 걸어야 하는데 벌써 체력이 소진됐으니 앞일이 걱정이다. 게다가 천왕봉에서 점심을 때우고 출발을 할 때쯤 설상가상 안개비가 굵은 비로 바꿨다.
하산하는 강지점장 일행과 작별하고 또다시 강행군했다. 장터목을 지나고 세석산장을 옆에 두고 계속 계속 전진했다. 기진맥진해서 얘기도 없다. 오로지 지친 몸으로 묵묵히 뚜벅뚜벅 걷기만 할 뿐이다.
저녁 7시쯤 지리산에서 제일 걷기 좋은 등산로인 벽소령 길에 접어들었다. 이제 이 평탄한 길이 끝나는 곳에 피곤한 몸을 쉴 벽소령 산장이 나온다. 그래도 지친 몸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힘이 솟기 보다 오히려 다 왔다는 안도감에서 맥이 빠진다.
침상을 배정 받고 젖은 몸을 대충 말리고 저녁을 지어 먹어야 하는데 몸이 천근같이 무겁다. 100미터여 밑에 있는 취사용 샘은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지. 너무 지친 나머지 배는 고픈데도 밥은 먹히지 않는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어쩌겠는가? 억지라도 먹어야지.
새벽 6시부터 최과장이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부산을 떤다. 어제 제일 힘들게 걸었는데 젊은 사람이 회복은 빠른가 보다. 어제 먹다 남은 밥 누렁지에 라면과 남은 부식을 넣어 잡탕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오늘은 빠른 걸음으로 7시간은 걸어야 성삼재에 도착한다. 어제 보다는 길도 험하지 않고 거리도 짧지만, 그래도 비는 계속 오는데다 지친 몸으로는 만만찮은 거리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지치고 신경도 날카로워짐을 느낀다. 이제 몸은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관성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 어제와 달리 남을 배려하기 보다는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먼저 최과장 신발이 탈이나고 계속 뒤 처진다. 산중에서 신을 갈아 신을 수도 고칠 수도 없어 붕대로 감아 응급조치를 하고 걸을 수 밖에 없다. 지친 몸이 더 지칠 수 밖에. 우리도 지치기는 마찬가지기에 도와줄 수도 없다.
앞서 가다 멈춰 기다리기를 반복하면서 자신과 싸우면서 걷고 걸었다. 어렵게 어렵게 오후 2시에 목적지 성삼재에 도착했다. 악천후에다가 리더라는 중압감이 겹쳐 피곤이 과했기에 지리산종주를 다 했다는 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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