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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여행

눈 온 다음날엔 마산봉에 가자

입춘도 지나 봄 날 처럼 따뜻해 '겨울이 다 지났구나' 하고 남도 봄 여행 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갑자기 날씨가 한겨울 처럼 추워지더니 눈까지 내렸다. TV 기상캐스터는 올 겨울 서울에서 가장 많이 내렸다고 했다.

눈 덮인 산. 겨울 나산(裸山)에 흰 눈 옷까지 입은 설산의 매혹적인 풍광, 생각만 해도 가슴 뛰었다.   

거실에서 커피 마시면서 바라보는 눈 덮인 예봉산은 날 더욱 설레게 했다.

 

마산봉에 가자.

겨울 눈오면 꼭 갔다와야지 마음속 품어왔던 다짐이 나를 못 견디게 했다.

지난해 동해안 문화답사차 들린 고성 청관정에서 마산봉 설경이 고성의 8경중 하나라는 안내문을 본 후, '눈 덮인 마산봉 산행'은 나의 눈 산행 원픽이 되었다.   

 

산행코스는 알프스 스키장-마산봉-병풍바위-대간령-마장터-박날나무 쉼터. 산행거리 14Km. 소요시간 7시간.

 

 

 

 

아침 7시20분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했다.

눈 온 뒤에 기온도 많이 떨어진 터라 길이 얼고 미끄러울 줄 알았었는데, 도로사정은 아주 좋았다.

국도뿐만 아니라 지방도로도 눈은 흔적도 없이 치워졌고, 빙판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도로관리를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9시 40분에 진부령에 도착했다. 날씨는 예상보다 춥지 않았고, 바람도 잔잔했고, 하늘은 맑고 파랳고, 따뜻한 햇살에서는 봄기운마저 느껴졌다.

 

'백두대간 진부령' 거대한 화강암 표지석이 덩그러니 우리를 맞았다.

산행 안내판이나 이정표를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 산행이 처음인지라 당황스러웠다.

주변에 사람도 보이지 않아 알프스스키장 방향으로 표장도로를 따라 걸었다. 도로옆에는 폐장된 스키샾, 음식점들이 을씨년스런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알프스스키장은 2006년 폐장되었다.  

 

 

 

폐장된 알프스스키장 지나서 등산 안내목이 나타났다.

진부령 고개에서 포장도로 따라 3.9Km를 왔고, 마산봉까지는 1.9Km였다.

등산로 입구에 국립공원관리소 직원이 차에서 내려 우리쪽으로 걸어와서 깜짝 놀랬다.

혹시 등산이 금지된 것이 아닌가? 걱정됐다.

그런데 등산가냐고 묻더니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싱겁게 말했다.

 

눈에 덮인 등산로에는 사람이 지난간 흔적은 없었다.

우리가 눈 온 후 처음으로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높게 자란 이깔나무 숲을 지나고, 가파른 신갈나무 숲을 지나자 무릎까지 눈에 빠졌다.

땅도 나무도 온통 눈 세상이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러셀하며 개척해 나가니 기분마저 업됐다.

두툼하게 하얀 눈 옷을 입은 나뭇가지, 그 사이로 뵈는 파란 하늘은 원시 모습처럼 맑고 깨끗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마산봉에 올랐다. 해발 1,052m. 그리 높지 않은 산 봉우리지만 전망은 막힘 없이 툭 튀었다.

북서쪽 건너편으로 보이는 눈 덮인 백두대간은 감탄을 자아냈다.

거대한 하늘 화폭에 붓으로 힘차게 산 줄기 근육을 그리고 섬세하게 속살까지 그러낸 나산(裸山)의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환상적이고 황홀했다.

마산봉 설경이 고성 8경 중 하나로 뽑인 것은 당연하다고 느꼈다. 나는 주저없이 마산봉 설경을 내가 본 설경 중 최고의 설경으로 뽑겠다.

 

하늘이 푸르고 맑아 향로봉도 보이고 산너머 멀리 금강산까지 보였다.

하기야 마산봉이 금강산 1만2천봉중 제2봉이라 하니, 여기도 금강산군에 속하고 실제로 금강산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고 한다.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니 동해바다가 보이고, 통일전망대가 보이고 그너머로 해금강도 보이는 듯 했다.

남으로는 북설악 능선이 춤추듯 흐르고, 멀리 남쪽 하늘에 설악 서북능선이 병풍처럼 펼처져 있고, 대청봉도 봉우리 봉우리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병풍바위를 지나고 암봉을 지나 내려오는 하산길은 백두대간 능선길을 따라 계속 이어졌다.

눈 온 후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없는 미답지였다. 러셀을 하면서 길을 개척했다.

등산로가 흔적없이 사라진 구간도 있었고, 무릎까지 눈에 빠지는 곳도 있었다.

두세차례 등산로를 잃어 헤매기도 했었다. 보통 산행보다 체력 소모가 훨씬 많음이 느겨졌다.

바람이 잦고 양지바른 곳을 택해 휴식을 겸해서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커피까지 마시는 짧은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드디어 대간령(새이령)에 도착했다.

초행길이고 눈길이라 길을 잘못 들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는데, 새이령에 도착하니 안도가 됐다.

여기서부터 미시령까지 백두대간 등산로는 막혀 있다.

그런데 통제구간 안에 내가 꼭 가고픈 신성봉이 있다. 금강산 1만2천봉중 제1봉이며, 울산바위가 지척에서 보이고 속초시내와 동해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곳이 신성봉이라는 말을 어느 등산 고수에게서 들었다.

 

길은 개울을 따라 이어졌고, 거의 평탄하고 넓었다. 개울은 점점 폭을 넓혀 내가 되고 흐르는 물도 수량이 제법 많아졌다.

수차례 개울을 건너야 했는데, 디딤돌이 물에 잠기거나 얼음에 덮여 조심스레 건너야 했다.    

이길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옛길, 보부상들이 해산물을 지고 넘던 길이다.

마장터는 물물거래를 하던 장터가 있던 곳으로 한창 번창할 때는 30여가구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두세채 집이 있고 사람의 흔적도 느껴졌다.

거의 5Km에 달하는 계곡길은 표고차가 거의 없는 완만하고 순한 계곡이다.

숲도 울창하고 물도 풍부해 휴양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박달나무쉼터에 오후 5시에 도착했다. 손님이 없는 겨울 평일이라 불이 꺼져 있어 주인이 없는 줄 알았는데 문이 열러 있었다.

컵라면을 안주 삼아 막걸리 1병을 마시고 원통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5월 연초록 신록이 물들 때 다시 오기로 했다.

그리고 또 눈 온 다음날엔 마산봉에 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