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트레킹(2) -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 W트레일
드디어 이번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 W트레킹을 위해 국경버스를 타고 아르헨티나 칼라파테에서 칠레 나탈리스로 출발했다. 등산의류 브랜드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파타고니아’는 남미의 39° 이남 지역을 부르는 명칭이다. 깔라파테는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관문이고, 나탈리스는 칠레 파타고니아 관문이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풍경은 끝없이 너른 메마른 황무지의 연속이었다. 칠레 국경 검문소에서 입국절차를 밟았다. 공산품 이외의 일체 음식물은 반입할 수 없었다. 목적지까지는 5시간쯤 걸렸다.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는 국립공원 가는 버스표와 돌아오는 배표와 버스표를 건네주고, 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고 떠났다. 트레킹 기간 중 가이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알아서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트레킹 주의사항 영상 교육을 받고, 방문자센터를 거쳐 첫날 야영지로 들어갔다. 날은 점점 저물어 가고, 설상가상 세찬 비바람까지 몰아쳤다. 계곡을 통해 휘몰아쳐 내려오는 강풍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바람의 땅, 예측할 수 없는 거친 날씨였다. 파타고니아는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하지 않았다. 야영지에 도착하여 배정 받은 텐트에는 두 사람이 겨우 잘 수 있는 면적에 침낭 두개 덜렁 놓여 있었다. 궂은 날씨, 가이드 없는 우리만의 트레킹, 비 내리는 밤 텐트 취침 등등. 트레킹을 잘 마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함께 서글프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음날 새벽 계곡 물소리에 눈이 떠졌다. 다행히 날씨는 순해졌고, 공기는 상쾌했다. 푸른 하늘이 나타났고, 산봉우리는 아침 햇살을 받아 붉게 빛났고, 어제 밤 심란해졌던 마음도 사라졌다. 아침밥을 먹고, 엄청나게 큰 햄버거와 사과를 받고 물통을 챙겨 파타고니아의 상징 '토레 델 파이네'를 알현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깊고 가파른 계곡엔 빙하물이 우유 빛 포말을 일으키며 흘렸고, 나무가 자라지 않는 검은 바위산엔 정상부터 비단 폭 같은 폭포가 멋진 곡선을 그리며 흘려 내렸다. 여전히 나무는 너도밤나무 일색이고, 두 사람씩만 건널 수 있다는 안내판이 이색적이었다.
나무도 점점 키를 낮추고 돌길이 이어지더니, 화강암 돌덩이가 강물처럼 이어진 돌 강이 나타났다.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파른 돌 강을 힘겹게 돌아 올라서니 토레 델 파이네가 눈앞에 불쑥 나타났다. 옅은 구름 안개로 살포시 수렴을 하고 온전한 모습은 드려내지 않았다. 하지만 기묘하고 거대하고 압도적이었다.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아 구름이 비켜나기를 기원하며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눌렀다. 가까이 있는 외국인이 인증사진을 부탁해왔고, 나도 인증사진을 부탁해 인생 샷을 남겼다.
12백만년 전에 마그마가 땅속 깊은 곳에 관입 후 식어 화강암이 되었고, 이 화강암 덩어리가 조륙운동과 조산운동으로 융기하여 바위 산줄기를 형성하였다. 그 후 빙하기 시대, 이곳에는 1,000m 이상 빙하가 쌓였고, 이 빙하가 움직이고 녹으면서 산을 깎고 침식시켜 이런 기묘한 형상을 만들었다. 토레 델 파이네는 조륙운동과 조산운동이 만들고, 빙하가 깎고 다듬은 자연의 예술품인 것이다.
파이네 W트레킹 3일째. 오랜만에 느긋한 마음으로 배낭을 챙겨 메고 다음 숙박지를 향해 출발했다. 거리는 약 16km. 소요시간은 넉넉잡고 7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이틀 전 세찬 비바람 속에 힘겹게 오른 산길을 내려서니 완만한 산책길이 나타났다. 침식으로 잘려 나간 산자락에는 켜켜이 쌓인 빙퇴석 줄무늬가 선명했다. 빙하가 흘려 내리면서 만들어 놓은 시간의 흔적이다. 여기저기 선홍빛 붉은 꽃을 단 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너도밤나무만 봐 오다가 다른 종류의 매혹적인 꽃나무를 보니 반갑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도중에 얼굴이 동그란 한국 여대생 둘을 만났다. 부산에서 온 그녀들은 40일 동안 중남미를 여행한다고 했다. 젊음이 아름답고 부러웠다. 해맑게 웃는 그녀들에게 햇반, 라면, 김, 고추장, 김치통조림, 간장 등등, 우리가 가져온 먹거리를 아낌없이 몽땅 줬다. 통통 뛰며 고마워하는 그녀들이 예뻐 인증 사진까지 남겨 줬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기막힌 풍경이 나를 감동케 하였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에메랄드 빛 호수 그리고 흰 눈 덮인 설산. 한 폭 유화 같았다. 지금까지 트레킹이 힘겨운 등산을 동반했다면, 이런 풍경을 바라보면서 평탄한 길을 걸으니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풍경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빠져 들었다. 트레킹의 참 묘미는 이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곳의 풍경은 이색적이고 단조롭다. 호수의 코발트 물 빛, 날카롭게 솟아 있는 설산, 단조로운 숲 등등.우리의 산 풍경과는 다른 느낌을 많이 준다. 우리의 산이 주는 느낌이 어머니라면, 이곳 산은 흰 드레스 차려 입고 포토존에 선 탈렌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하고 풍요로움에서는 고마움이 느껴지고, 색다르고 단조로움에서는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일까.
드디어 쿠에르노스 캠핑장에 도착했다. '쿠에르노스' 는 캠핑장 뒷쪽 산 이름에서 따 왔다.
쿠에르노스 산은 파이네 국립공원에서도 특이한 바위산이다. 정상부근은 검정색이고 중간 부근은 흰색이고 아래 부문은 또 검정색 암석이다. 검정색 퇴적변성암 사이에 흰색 화강암 바위가 관입하여 굳어 한 덩어리 바위산이 되었다가 빙하에 의해 깎이고 풍화돼 만들어졌다. 멀리서 보면 현대적 감각으로 세워진 난공불락 성채 같다.
트레킹 4일차, 하늘은 또다시 흐렸다. 오늘은 약 25km, 10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힘든 여정이다. 계곡을 따라 브리타니코 전망대까지 가서 토레 델 파이네 뒷모습을 보고 마지막 숙소 파이네 그란데 로지까지 가는 일정이다. 갑자기 계곡이 넓어졌고, 빙하를 머리에 이고 있는 설산이 나타났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떨어지는 빙하가 목격되기도 했다. 이곳은 빙하가 산을 깎고 다듬고 있는 생생한 현장인 셈이다. 머리에 이고 있는 빙하가 다 떨어지고 나면 이곳도 토레 델 파이네처럼 유명한 명소가 될지도 모른다.
드디어 마지막 숙소 파이네 그란데 로지에 도착했다. 위치는 해발 36m, 서경 51˚43'69", 남위 73˚5'516". 남미에서도 남쪽 끝 부근이다. 트레킹 마지막 날 일기는 기막히게 좋았다. 떠나기 전 신고 다녔던 트레킹화가 구멍이 나고 끈이 떨어져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안녕을 고했다. 여행은 순조롭지 못했다. 여행사에서 짠 일정이 현지 사정과 맞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었고, 하마터면 귀국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 우리가 이 코스의 초창기 여행자였기 때문에 아찔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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