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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26. 당신들의 천국 무대, 오마 간척지 도화면 소재지에서는 좀 불편한 하룻밤을 보냈다. 모텔도 낡았고, 아래층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랫소리에 잠도 설쳤다. 아침 6시, 찌뿌둥한 몸으로 모텔을 빠져나왔더니 바로 옆 건물에 영업을 하는 식당이 있었다. 벌써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전어구이와 배추 된장국이 곁들인 백반은 입맛에 맞았으나 양이 너무 많아 남겼다. 그리고 길 건너 마트에 들러 사과 1개, 빵 2개, 요구르트 1병 그리고 물 2병을 샀다. 작은 면소재지 마을에서 24시간 편의점이 아닌 일반 마트가 아침 일찍 문을 연 것도 신기했다. 도화면 사람들은 하루를 유난히 일찍 시작하는가. 번듯하게 자리 잡고 있는 면사무소 앞을 지나 마을 끝자락에서 도화 성당을 만났다. 성당은 단정했고, 단아함과 신성함이 느껴졌다. 도화성당..
남파랑길25. 다시 걷고 싶은 고흥반도 남단 바닷길 새벽 4시도 안 돼서 눈이 떠졌다. 어젯밤에 많이 마신 술 탓인지 목이 많이 말랐고, 머리도 조금 지근지근했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뒤척거리다 새벽 공기나 마실까 하고 나왔더니 하늘에 별이 총총 내려다보고 있었다. 밤하늘만 보면 제일 먼저 찾는 북두칠성과 북극성은 산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서쪽 하늘에 삼태성이 또렷하게 보였다. 삼태성은 시계가 없던 어릴 적 밤 시각을 알려주는 별이기도 했었다.  요즘은 별을 보기가 참 쉽지 않다. 공기가 맑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고, 너무 많은 인공의 불빛도 그 원인일 것이다. 어릴 적 본 밤하늘 별들이 생각나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으로 여행할 때면 으레 밤하늘을 쳐다보곤 했는데, 운 나쁜 탓인지 신통찮았다. 남미의 파타고니아에서도, 바이칼의 알혼섬에서도, 키르기스스탄..
남파랑길24. 고흥길에서 만난 사람들 어느새 고흥땅에 들어섰다. 풍경은 확 바뀌었다. 여전히 왼편 바닷가로는 갯벌이 이어졌지만, 오른편으로는 넓은 들이 보였고 꽤 큰 호수도 만났다. 방조제를 지나자 작은 포구가 나타났고, 수문식당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망설임도 없이 들어갔다. 손님은 계속 들어와 빈자리를 채웠다. 알고 보니 TV 백반기행에서도 나온 적이 있는 유명 맛집이었다. 막걸리 한 병에 낙지탕탕이 비빔밥을 시켜, 막걸리는 반 병만 마시고 비빔밥은 맛있게 다 비웠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믹스커피를 뽑아 천천히 음미하고 길을 나섰다. 눈앞에 배낭을 메고 걷는 두 사람이 보였다.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어 얘기를 나눠보니 나처럼 남파랑길을 걷는 보도 여행자로 친구지간이었다. 남파랑길에서도, 해파랑길에서도 친구와 함께 걸은 적은 있지만 낯선..
남파랑길23. 갯벌 따라 순천만에서 벌교만까지 오전 10시쯤 순천역에 도착했다. 순천역에는 벌써 3번째다. 광양구간과 여수 구간 트레킹 때는 귀가 역이었고, 이번에는 시작 역이 되었다. 역전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택시를 타고 남파랑길 62코스 시작점인 화포로 갔다. 내 또래인 택시기사는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분이었다. 이것저것 나에게 물어봤고, 동료기사 얘기며, 아들 얘기며, 군대 얘기까지 쉴 새 없이 얘기했다. 틈새를 잡아 여행 정보를 얻을 겸 말을 걸어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화포는 조용하고 아담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썰물 때인지 마을 앞 갯벌은 물기로 뻔득거리며 점점 멀어져 가는 듯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의 그림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의 갯벌은 여자만 갯벌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너른 갯벌에 촘촘하게 대나무 막대가 꽂혀 있었다..
남파랑길22. 순천만의 초가을 풍경 순천만 와온 마을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3시쯤이었다. 지난 8월 순천왜성에서 순천역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서 택시기사에게 순천에서 추천하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와온마을 일몰과 칠면초를 꼭 보라'는 말을 듣고 마음에 새기고 있던 곳이었다. 마침 시간도 여유, 적절하게 도착했다. 나즈막한 산아래 마을이 형성돼 있었고, 앞으로는 너른 갯벌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마을 유래비를 보니, 뒷산이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누울 와臥'와 '따뜻할 온溫'자로 와온臥溫이라 이름 지었다고 했다. 일단 숙소를 먼저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마침 마트가 있어 들어가 아이스크림 1개와 캔맥주 1캔을 사고 여사장에게 잠잘 숙소를 소개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어딘가 전화를 걸더니 일몰한옥 민박집을 소개해줬다...
남파랑길21. 여수 가막만 그리고 여자만 소호동의 아침 바다는 고요했다. 바다는 항아리처럼 움푹 들어와 있었고 맞은편 얕은 산 아래 선소 유적지가 있었다. 바깥 바다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숨은 자리에 돌아앉아 있었다.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 거북선을 건조하고 수리한 굴강, 무기를 만든 대장간, 배를 정박한 곳으로 추정되는 계선주 등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었다. 아침 기온은 좀 쌀쌀하기까지 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어제보다 낮 최고기온이 8도나 떨어진다고 했다. 한 여름보다 더 더웠던 어제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하늘엔 구름이 많이 끼었고, 그 구름 사이로 옅은 아침노을이 스며들고 있었다. 소호항을 지나자 나무데크길이 나타났다. 그 나무데크길에서 바라보는 아침 바다는 섬들로 둘려 쌓인 큰 호수 같았다. 잔잔한 바다, ..
남파랑길 20. 낭만 도시, 여수 여수 종합버스터미널에 10시 30분쯤 도착했다. 9월 중순 날씨치고는 너무 더웠다. 일기예보는 한반도를 비껴 일본 열도를 따라 올라간 태풍이 더운 열기를 몰고 올라온 탓이라고 했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간 덕분인지 하늘은 맑고 푸른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었다. 길 건너편에 '내가 조선의 국밥이다' 상당히 자극적인 문구를 내건 식당이 보였다. 아직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육교를 건너 국밥집에 들어갔다. 식당에는 식사 중인 사람들이 있었고, 내 뒤로도 몇 분이 더 들어왔다. 든든히 배를 채운 후,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섰다. 남파랑길 안내 리본을 만나 완만한 오름길 차도를 따라 걷고, 아파트 단지를 지나니 여수엑스포역이 나타났다. 드디어 여수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맞은편으로 엑스포 건물들이 쭉 늘어서..
남파랑길19. 광양숲에서 순천왜성 가는 길 광양에서 둘째 날 아침 6시, 여명의 아침이었고 짧은 옷을 입기에는 좀 쌀쌀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벌써 계절의 변화가 느껴졌다. 하기야 입추를 지난 지 벌써 일주일은 지났으니. 남파랑길은 8차선 차로를 따라 자전거길과 함께 조성된 인도를 따라 이어졌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거리에 사람은 드물었지만, 차들은 무서운 속도로 굉음을 뿜으며 달리고 있었다. 멀리 이순신 대교가 마치 하늘에 걸려있는 듯 보였고, 해안에는 대형 크레인이 거인처럼 서있었다. 산업도시 광양의 스카이라인은 마치 거인국의 서커스 무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끄러운 도로를 한참을 가다가 임도로 꺾어 들었다. 숲으로 우거진 도로로 들어서자 비로소 복잡한 도심을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임도 초입은 가팔랐지만 이내 순해졌다. 광양 시내가 ..